共找到 8,413 条论著文献

1、韓國歷代高僧傳 2545 - 2001

2、한 권으로 끝내는 통중국사 4차산업혁명시대를 이끄는 CEO와 리더들의 필수 지침서 2018/5

摘要:과거를 통해 미래를 대처하라! 21세기 동북아 허브시대를 관통하는 역사적 지략! 고대부터 21세기까지 중국 25사를 통째로 조명한다! 『한 권으로 읽는 통중국사』는 중국의 신화와 전설부터 하, 은, 주, 춘추전국, 삼국, 5대10국, 요금과 송원, 명청을 지나 중화인민공화국까지의 중국사의 모든 것을 한 권에 담았다. 중국 역대 왕조의 정사로 인정되는 24사, 즉 『사기』, 『한서』, 『후한서』, 『삼국지』, 『진서』, 『송서』, 『남제서』, 『양서』, 『진서』, 『위서』, 『묵제서』, 『주서』, 『수서』, 『남사』, 『묵사』, 『구당서』, 『신당서』, 『구오대사』, 『신오대사』, 『송사』, 『요사』, 『금사』, 『원사』, 『명사』에 「청사고」까지 기본으로 했다. 특히 25번째 역사인 현대 중국사까지 모두 아우른 중국역사서는 본서가 국내 최초일 것이다. 또 25사 전 역사를 하나로 꿰어 역사적 거울로 삼고자 각 챕터마나 『사평』을 덧붙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들어가는 글 _ 정사正史와 사략史略 1장 선사先史 01 신화와 전설 2장 하은夏殷 02 역사로의 진입 3장 서주西周 03 주나라의 건국 4장 춘추春秋 04 동주시대와 춘추시대 05 제자백가의 출현 5장 오월吳越 06 군신공치의 흑막 6장 전국戰國 07 전국시대의 도래 08 종횡가와 병가의 활약과 장평대전 7장 진한秦漢 09 진시황의 천하통일 10 천하대란과 망년지교 11 제2의 천하통일과 토사구팽 12 문경지치의 등장 13 한무제의 흥망 14 군주폐립과 패도 15 무혈혁명과 학술 16 후한의 건립과 전개 8장 삼국三國 17 암군 출현과 삼국정립 9장 남북南北 18 서진의 출현 19 동진과 남북조의 흥망 10장 수당隋唐 20 수나라의 통일 21 당태종과 정관지치 22 측천무후와 무주지치 23 당현종과 안사지란 11장 5대五代 24 막부와 5대10국 12장 요금遼金 25 요나라와 전연지맹 26 금나라와 정강지변 13장 송원宋元 27 송나라 건국 전후 28 도덕철학과 노선 대립 29 대제국의 등장 30 남송의 패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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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주족 이야기 만주의 눈으로 청 제국사를 새로 읽다 2018/5

摘要:「만주는 내륙아시아를 들여다보는 창문」 『만주족 이야기』는 14세기 부족 시기의 이동과 충돌, 그리고 융합부터 17세기 초 만주의 탄생을 거쳐, 18세기 청 제국의 극성기까지 만주족의 역사와 생활 모습, 문명적 특질을 생생하게 살펴본다. 모두 28개의 이야기들은 만주족과 청대사의 거시사적인 골격을 세우고 살을 붙여 가면서도 만주족의 성명, 말구종(쿠툴러), 놀이(가추하), 화폐 등 작은 소재 같아 보이지만 만주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주제들을 망라하여 상세하고 흥미롭게 다룬다는 점에서 기존 통사나 청대사와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이 책 『만주족 이야기』는 이야기의 주인공을 만주족(여진)으로 설정한다. 그동안 청 제국을 다루는 시각은 그 건설자인 만주족의 국가라기보다 중국 왕조의 하나라고 보았고, 또한 여진을 언제나 명과 조선을 침략하고 약탈하는 야만인으로만 그려 왔다. 조선이나 중국 중심적인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만주족이 남긴 기록을 최대한 활용하여 그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입장에서 서술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또한 저자 이훈 선생은 이른바 만주족의 '중국화(한화漢化)'라는 통설을 반박한다. 그동안 만주족이 청 중기에 이르러 상무성과 고유의 문화와 언어를 상실하고 한화되었기 때문에 청사에서 만주족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 또한 중국 중심적인 시각이라고 비판하는 저자는 팔기, 만주어, 만성, 샤머니즘, 장백산 신화, 수렵, 각종 놀이 등의 주제를 통해 만주족이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는지를 보여준다. 나아가 국가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을 만주, 한인, 몽고, 신강, 티베트의 5개 부분으로 보았던 청의 시각을 지금 중국이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중국은 청제국의 유산이라 주장한다. 다만 다른 점은 지금 중국의 중앙정부가 소수민족에 미치는 영향이 만주족 정부의 그것보다 더욱 강력하고, 한족 문화가 다른 민족 안으로 침투해가는 양상이 매우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는 점이라는 것이다. 만주족과 청대사를 전공하고 일생의 역작, 만주어를 한국어로 대역하고 뜻풀이를 더한 국내 최초의 대형 만주어 사전『만한사전』을 낸 바 있는 저자 이훈 선생은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명쾌하게 이야기한다. "한국인이 만주족과 청에 대해 아는 것은 이웃 민족과 국가에 대한 지식을 늘리는 것 이전에 자국과 자민족의 역사에 대해 아는 것을 의미한다.」 몽케테무르가 남하해서 거주했던 회령을 앞으로 부산에서 출발한 철도가 지날 것이다. 또한 그곳은 만주로 북상하는 철도의 한반도 기착지가 될 것이므로 한반도 북부와 만주지역에 대한 지식의 요구가 급팽창할 것이라는 것이다. 한눈에 보는 만주, 강의 이름에서 역사의 실마리를 찾다 서쪽의 흥안령산맥부터 동쪽으로 동해까지, 북쪽의 흑룡강에서 남쪽의 백두산까지를 포함하는 광활한 만주에서 부족이나 씨족 단위로 흩어져 살았던 여진은 14세기 후반 원이 몰락하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주는 명과 조선, 몽골의 공격에 의해서든 내부의 상쟁의 의해서든 활발했는데 이동의 방향은 대체로 만주의 북동부에서 남부나 서부를 향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2세기에 걸친 이산 끝에 16세기 후반 이른바 건주여진, 해서여진, 동해여진으로 정립하였다. 이 책의 초반은 건주여진의 전신인 오도리부의 역사를 조명하고, 해서여진 4부가 형성되고 건주여진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복잡하게 전개된 그들의 이동과 충돌, 융합의 과정을 추적한다. 흥미로운 점은 강의 이름과 만주어 지명의 원형에서 그들 역사의 실마리를 찾는다는 것이다. 강 이름이 그 연안에 거주했던 집단이 자신들의 부족이나 초기 국가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만주의 척추이자 어머니 강으로 불린 흑룡강의 만주어는 검은 큰 강이란 뜻의 『사할리안 울라(울라는 큰 강, 비라는 일반적인 크기의 강)』이고, 지금도 조선인이 많이 살고 있는 사할린도 만주어로 원래는 『사할리얀 올라 앙가 하다(검은 강 어귀의 산봉우리)』가 축약된 것이다. 해서여진의 종주국 격인 『울라』는 숭가리 울라(송화강)에서 나왔고 여허부는 여허강, 호이파부는 호이파강에서 이름을 땄다. 또한 누르하치의 숙수후부는 숙수후강이다. 동해여진 후르카가 살았던 무단강의 『무단』은 모란꽃과는 무관하고 『굽은』 혹은 『구부러진』을 뜻하는 만주어다. 다른 말로 후르하강 혹은 후르카강이라고도 불렸다. 송화강과 함께 백두산에서 발원하는 대표적인 강인 압록강과 두만강이 한(漢)어에서 유래한 것 같지만 실은 만주어다. 압록은 만주어로 '경계'를 뜻하는 『얄루'이며 강변의 여진족을 얄루강부라 칭했다. 두만은 만주어나 몽골어에서 『만萬'을 의미하는 『투먼'에서 나온 말이다. 이처럼 이 책은 만주에 관한 인문지리 입문서로서도 의미가 있다. 왜 만주족, 청 제국은 오랫동안 끝없이 정복전을 벌였을까? 건주여진의 숙수후 비라부 출신의 누르하치는 1583년 일개 소부락으로 기병한 후 1588년 건주여진을 통일하고 차례로 여진 세계를 병탄하여, 1616년에 마침내 아이신 구룬(금국) 즉 후금을 수립했다. 신생국가 후금은 1619년에 국가의 존망을 걸고 명과 조선의 연합군과 격돌했다. 이 사르후 전투는 동아시아 역사의 향방을 바꾸었다. 누르하치의 후계자 홍 타이지는 1635년에 족명을 주션(여진)에서 만주로 개칭하고 1636년 다이칭 구룬(대청국)의 수립을 선포했다. 청은 그 후 100여 년간 영역을 끝없이 팽창해 갔다. 만주, 중국, 타이완, 동몽골 칼라, 서몽골 준가르, 티베트 동투르키스탄 신강, 카자흐 남부가 차례로 복속되면서 18세기 중엽에 청은 수많은 민족을 지배하고 광활한 강역을 경영하는 대제국이 되었다. 왜 청은 오랫동안 끝없이 정복전쟁을 벌였을까? 저자는 정복전쟁을 벌인 동력의 하나로 청의 군사 문화를 짚는데, 지배 민족인 만주족 전체가 팔기에 속한 군인이자 군인 가족이었다는 전제를 아는 것이 핵심이라 한다. 만주족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팔기에 속한 기인이었다. 심지어 만주족 가족에 속한 노복까지도 기인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만주족의 모든 성년 남성은 전업 군인이었고, 그에 딸린 모든 가족은 군인 가족이었다. 하나의 민족 구성원 전체가 농업, 공업, 상업 등의 생산에 종사하지 않고 전업 군인으로 생계를 영위하며, 수백 년의 장구한 시간 동안 자신들을 먹여 살리는 방대한 인구의 타민족을 지배한 사례가 인류사에 더 있을까? 저자는 팔기제라는 조직력에 관대함을 더한 것이 만주족의 탁월한 능력이라 한다. 팔기제라는 조직으로 국가를 건설하고, 중국을 지배하면서 팔기제를 중국의 행정조직과 결합해서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 몽골인과 한인을 일정 부분 지배의 파트너로 인정했던 관대함이 제국 건설과 경영의 동력이었다는 것이다. 청은 중국보다 내륙아시아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열하의 위치가 몽고를 제어하기에 유리한 곳이고 열하에서 몽고를 제어하지 못하면 요동이 혼란스러워질 것이고, 그것은 청이 천하의 왼팔을 잃는 것이다. 그리고 황제가 열하에서 묵는 명분은 피서이지만 사실은 그 자신이 변경 지역을 직접 방어하고 있는 것이다.」 연암 박지원이『열하일기』에서 기록한 위의 글처럼 열하의 피서산장은 청 제국이 포괄하는 모든 민족들에 대한 청의 지배를 확인하고 그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정치중심지였다. 저자는 근래 서양학계에서 신청사 학파로 불리는 일군의 연구자들의 연구를 적극 소개하면서, 청을 중원 왕조만이 아닌 내륙아시아의 전통선상에 위치한 왕조로 파악한다. 과거에는 청이 역대 중국 왕조 가운데 강력했던 왕조 정도로 인식되어왔지만 저자는 청의 강역에서 내륙아시아에 포함되는 만주지역, 몽골, 티베트, 신강이 중원에 비해 차지하는 비중이 컸을 뿐만 아니라 청이라는 국가의 기본적인 통치 시스템이 중국보다 내륙아시아의 전통에 더 많은 영향을 받았고 그것을 지배에 지속적으로 활용했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통치 시스템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 열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저자가 이 책에서 열하를 하나의 큰 주제로 선택한 이유가 이러한 청의 내륙아시아적 전통에 대해 피력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주족의 문제도, 청나라의 문제도 만주족의 시각에서 앞에서도 말했듯이 청 제국사에서 만주족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은 서구 학계이고 근래 들어서이다. 그동안 청을 건국하고 지배한 집단이 만주족이라는 사실은 청의 초기 역사를 다룰 때에만 중요하게 고려되었고 그 후의 시기를 고찰할 때는 흔히 무시되었다. 만주족이 청 중기에 이르러 자신의 문화와 언어를 상실하고 한화되었기 때문에 청사에서 만주족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만주족이 한화되었다는 『중국 중심적 시각』과 함께 청 말기에 서구 세력의 침입에 만주족 지배층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무능력에 대한 비판과 경멸이 현대에 이어진 점도 역사가들에게 청사에서 만주족의 요소가 중요하지 않다고 인식하게 만든 원인이었다. 이 책에서는 만주족이 자신을 한인과 구분되는 존재로 인식하게 하는 『만주족다움』의 요소들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기술한다. 만주족이 중국에 들어온 지 100여 년이 지난 18세기 중후기에 대다수 만주족이 만주어를 말하지 못하고 한어를 모어로 사용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어가 만주어 속으로 침투했고 그 결과 만주어가 쇠퇴하고 결국 소멸해 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엄밀히 말해서 한어의 침투가 곧 만주어의 쇠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예컨대 외국어의 유입이 곧 한국어의 쇠퇴가 아니며, 오히려 외국어의 유입은 한국어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어서 한국어를 발전시켜 준 동력이 된다는 이치이다. 만주어에 없는 한어를 번역하여 새로운 만주어 어휘를 만드는 작업이 꾸준히 진행되었지만, 그 작업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것은 만주어 상실에 대한 위기감이 최고조로 증폭된 건륭기였다. 저자는 만주족이 남긴 방대한 문헌들을 검토하다 보면 모어를 지키고 발전시키려는 그들의 노력에 경탄하게 된다고 한다. 또한 만주족이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그나마 지킬 수 있게 방어한 것은 각 주둔 도시에 만성을 쌓고 한인과 분리되어 살아 간 폐쇄적 거주 형태였다. 만주족이 만주어와 고유의 관습을 상실해갔어도 다수 민족인 한족에 완전히 동화되어버린 것이 아니라 만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계속 유지했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언어와 혈연과 관습을 민족의 구분선으로 간주하는 시각에서 탈피하여 만주족의 정체성을 그들의 자신에 대한 인식이나 제도에서 찾는 데서 출발해야 함을 강조한다. 예컨대 만주족은 팔기제나 만성 등의 제도적 틀 덕분에 『만주』라는 정체성을 청이 멸망한 후까지 계속 유지했다. 만주족의 문제와 그들이 건국한 청나라의 문제를 만주족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청 제국의 변경인 만주에는 만주족 외에도 몽골, 다구르, 솔론, 에벤크 등 여러 민족이 살았다. 이 책에서 주요 주제로 다루는 토로구트, 허저, 시버는 청제국의 변경을 구성한 민족 가운데 일부이다. 비록 일부이지만 변경민족의 역사를 책에서 소개한 이유는 제국의 중심보다 변경이 제국의 모습과 속성을 더욱 잘 보여준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들 민족은 청과 러시아 제국의 형성 과정에서 유난히 역사의 굴절을 심하게 겪은 민족들로, 세 민족의 역사를 통해 독자들이 제국의 장대한 모습뿐만 아니라 제국의 역사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힘겹게 이동하고 부침해야 했던 민족들의 애환까지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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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역주 일본판 삼강행실도 1 효자 2018/5

摘要:일본인 아사이 료이(?井了意, 1612~1691)가 일본어로 번역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가운데 효자(孝子) 上?中?下를 한국어로 옮기고 그 원문 텍스트를 일본어 고전문법의 틀 속에서 상세히 풀이한 전문도서다. 현재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본어 교육은 현대일본어의 의사소통능력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일본어문법』 『일본어강독』 『일본어작문』 등 각종 학습서에 등장하는 『일본어』는 당연히 모두 현대일본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고 학습한다. 또한 『일본문화』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경우에도 여기에서의 『일본』 역시 『지금의 일본』을 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한편으로는 일본의 전통문화나 역사에 대한 관심 역시 적잖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 학습자를 대상으로 저술된 일본어 고전문법 교재는 많지 않다. 또 있다 해도 면대면 강의 없이 교재만으로 독학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만큼 문법에 관한 또는 그 주변 사항에 대한 다양한 기초지식이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현대일본어 학습 과정이 그러하듯이 일본어 옛글 역시 『원서』와 직접 마주하고 앉아서 한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지름길일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읽을 것인가? 사실 일본에서 옛글은 언문일치 여부를 기준으로 둘 수도 있겠지만, 1946년 즉 일제강점 종료 직후 현대가나표기법(現代かなづかい)이 일본 내각(?閣)훈령(訓令)으로 제정되기 이전 역사적가나표기법(?史的?名遣)에 준하여 작성된 글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간단하다. 그렇다면 대략 천 년에 이르고 선택지도 물론 다양하다. 그 가운데 비록 이것을 정독한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왠지 우리에게 친숙한 『삼강행실도』를 선택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세종대왕의 명으로 1434년 처음 간행된『삼강행실도』는 『한문본』과 『언해본』이 있고 이후 여러 차례 모습을 달리하여 간행되었다. 그런데 이 책이 경로는 확실치 않지만 일본인에 의해 같은 제목으로 17세기에 일본어로 옮겨져 간행되었고, 이를 순수하게 언어자료 그것도 일본어 고전문법 학습서로 활용하기에 적절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1. 閔(びんん)?(たん)衣(い) 민손단의 2. 子(し)路(ろ)負(をふ)レ米(べいを) 자로가 쌀을 짊어지다 3. 楊(やう)香(きやう)?(とらふ)レ虎(とらを) 양향이 호랑이를 잡다 4. 皋(かう)魚(ぎよ)哭(こくす)レ道(ミちに) 고어가 길에서 울부짖다 5. 陳(ちん)氏(し)養(やしなふ)レ姑(しうとめを) 진씨가 시어머니를 봉양하다 6. 江(かう)革(かく)巨(きよ)孝(かう) 강혁거효 7. 薛(せつ)包(ハう)?(さ)掃(さう) 설포쇄소 8. 孝(かう)娥(が)抱(いだく)レ屍(かバね) 효아가 주검을 안다 9. ?(くわう)香(きやう)扇(あふく)レ枕(まくらを) 황향이 베개를 부채질하다 10. 丁(てい)蘭(らん)刻(きさむ)レ木(きを) 정란이 나무를 새기다 11. 董(とう)泳(えい)貸(かる)レ?(ぜにを) 동영이 돈을 꾸다 12. 郭(くわつ)巨(きよ)埋(うづむ)レ子(こを) 곽거가 아이를 묻다 13. 元(げん)覺(かく)警(いましむ)レ父(ち?を) 원각이 아버지를 깨우치다 14. 孟(まう)凞(き)得(う)レ金(きんを) 맹희가 금을 얻다 15. 王(わう)?(ほう)?(はいす)レ詩(しを) 왕부가 시를 폐하다 16. 孟(まう)宗(そう)泣(なく)レ竹(たけに) 맹종이 대나무밭에서 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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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변경과 경계의 동아시아사 2018/4

摘要:『조선 세종 때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국경이 확정되고, 이를 통해 한국의 영토가 완성되었다』는 인식은 올바른 것일까? 『영토의 덫』이라는 말이 있다. 영토라는 공간은 처음부터 자명한 것으로 주어지는, 혹은 자연적인 것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 의한 개입이나 조작에 의해 인공적으로 생성된 것이 영토인데,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영토 자체를 자의적으로 분할하여 논의할 때에 발생하는 함정을 이르는 말이 곧 영토의 덫이라는 것이다. 영토에 의미를 부여하여 그 공간을 성역화하게 되면, 그 영토를 둘러싼 분쟁을 해결하는 길은 더욱 멀어지게 된다. 현대 한국인들은 15세기 초반 세종대에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국경이 확정되었으며, 이를 통해 한국의 영토가 완성되었다는 인식을 역사교육을 통해 되풀이하여 교육받는다. 그러나 백두산을 중심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이 자연적인 경계 역할을 수행했다고 보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인식이다. 그럼에도 이런 역사인식을 유지하고 그에 심각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영토의 덫』에 빠지고 끊임없는 『국경』충돌의 위험성을 높이게 된다. 그럼 이런 인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려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 책은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에서 주최한 학술회의 『변경과 경계의 동아시아사』의 연구 성과들을 묶은 것이다. 책의 필자들은 『국경선』이라는 선(線)으로서의 경계 위에 존재하는 내셔널 히스토리의 허구를 드러내고자 하는 『변경사(border history)』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지대(zone)로서의 경계의 맥락』에서 동아시아사를 되돌아본다. 필자들은 19~20세기에 집중되었던 변경사 연구의 지평을 넓혀 동아시아의 한층 다채로운 역사경험을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그려냈다. 국민국가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건재한 이상,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망령』은 언제고 다시 부활할 수 있다. 내셔널 히스토리가 자아낸/자아내고 있는 역사인식의 『자명함』을 비틀어 끊임없이 다르게 질문해야 한다는 필자들의 주장은 한국사회의 역사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필자들의 『다르게 질문하기』는 세 가지 층위에서 실천되고 있다. 첫째 제국과 변경에 대한 거시적 조망을 시도하며 기존의 역사상을 해체하는 것, 둘째 중심과 주변의 복잡다단한 관계망 속에서 자타인식의 심층을 파헤치는 것, 셋째, 변경을 둘러싼 텍스트의 짜임새를 다각도로 조망하는 것이다. 첫 번째 방식의 접근과 관련하여 윤해동은 한반도 변경지대의 역사를 트랜스내셔널한 시각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반도의 북쪽 변경은 유럽의 베스트팔렌체제 성립에 자극받은 네르친스크조약, 북경조약의 영향 하에 지대에서 선으로 전환되어갔다. 『국경선』이 확정되면서 사람들의 이동에는 제약이 가해지고, 주민들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작업이 추진되었다. 그 이전까지 광대한 변경지대로 존재하던 요동지역을 둘러싼 변경의식은, 백두산정계비 설치 이후 차츰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변경의식으로 변화하였다. 이후 추진된 대한제국의 『간도 영유화』 정책은 근대적 민족주의가 정착하면서 『영토민족주의』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뒤이어 박혜정은 중국대륙의 북서부 스텝과 동남부 해안의 두 갈래 변경으로부터 청 제국을 균형 있게 조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북서부 변경에서 청 제국은 근대 제국들 가운데 가장 성공적으로 제국의 팽창과 중앙집권적 개혁을 적절히 변주하여, 소규모 민족국가들로 분열되는 일 없이 제국 규모의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이행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해안 변경에서는 국익을 위하여 근대의 역동성을 전유할만한 체제적 인식적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유럽이 18세기 동안 전세계에서 도서와 해안 지역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며 식민적 수탈체제를 구축하는 동안, 청 제국은 해양의 이웃세계에 대한 관심이 없었고, 이는 서양이 아편전쟁으로 중국을 개방한 이후 해안 변경의 불안정성이 본격화되면서 드러났다. 동중국해 해적들과 연계된 백련교도의 난, 서양 선교사들과 연계된 광동인들의 태평천국의 난 그리고 동남아를 오가던 중국인 체류자들이 주도한 신해혁명은 청 제국 전체를 무너뜨렸다. 다음으로 조원은 근세 동아시아 전장(典章)의 기본 틀인 6전(六典)의 모델을 제시한『 경세대전(經世大典)』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경세대전』의 편찬사업은 톡테무르 즉위 직후 규장각학사원을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여기엔 다분히 정치적인 맥락이 숨어 있다. 정치적 암투 끝에 제위에 오른 톡테무르는 자신의 정치적 정통성과 절대 권력을 천명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었고, 이에 중원의 전통적인 정서(政書)를 표방한 형식의 『경세대전』을 편찬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생동감 넘치는 원 제국의 다이너미즘을 상상케 한다. 두 번째 방식의 접근과 관련하여 김보광은 고려전기의 제주(탐라)가 『外國→蕃土→郡縣』으로 전환되어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삼국시대 이래 독자적인 정치단위로 존재했던 탐라는 고려 현종대에 주기(朱記)를 하사받아 일종의 기미주인 번토로 전환되었고, 탐라구당사(耽羅勾當使)가 등장하는 문종대 이후 고려 지배체계 속에 자리매김 되었다. 다만 외국으로서의 탐라의 기억은 완전히 불식되지는 않아, 13세기에도 탐라는 여전히 『남만(南蠻)』으로 불리곤 했으며 일정한 수탈조차 묵인되는 특수 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한승훈은 『접촉지대(Contact Zone)』를 키워드로 삼아 근대 전환기 거문도의 역사를 추적한다. 거문도가 조선전기 이래로 조선인과 일본인이 조우하는 접촉지대였음을 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19세기 후반 거문도가 제국 간의 세력다툼 속에서 『영국군의 거문도 점령 사건』을 통해 한층 농밀한 접촉지대로 거듭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당시 영국군과 거문도 주민 사이의 평화로운 관계를 두텁게 서술하면서도 『부드러운 제국주의』의 이면에 도사리는 제국의 냉철한 셈법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각 저자가 다루는 시기와 시선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보이지만, 중심과 주변의 자타인식의 결이 결코 매끄럽지 않았다는 점, 인적·물적 교류를 포함하여 늘 다양한 변수가 뒤엉켜 있었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확인된다. 세 번째 접근방식과 관련하여 이세연은 17세기 중반 일본의 북쪽 변경에서 생산된 『신라지기록(新羅之記?)』이라는 연대기를 분석하며 변경의 심성을 해명한다. 이 『신라지기록』을 생산한 마쓰마에(松前) 가문의 중층적인 혈맥 의식, 실용과 생존을 근간으로 하는 『궁마지도(弓馬之道)』의 내실에 주목하여, 중앙[京都]과 에조(蝦夷) 거주지를 아울러 응시하는 마쓰마에 가문 사람들의 경계인으로서의 감각, 타자와의 연이은 전란에서 비롯된 변경 고유의 망탈리테를 도출해낸다. 뒤이어 정면은 중화인민공화국의 『민족식별』 작업을 거쳐 소수민족인 『백족(白族)』이 탄생하게 된 경위를 추적한다. 민족식별 작업의 허구, 국가 권력이 주도하는 역사서술의 민낯을 드러내기 위해 필자는 시종일관 「누가 백족의 선민인가?」가 아니라 「누가 백족(의 선민)을 만들어냈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20세기 중반 대리(大理)지역의 『민가인(民家人)』들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소수민족』이 되어 스스로의 자치구역을 갖는 것을 주저하였다. 스스로 『한인』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던 이들은 『한족』의 일부가 되어 사회주의공화국의 국민이 되기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은 『백족』 인민의 『상층』을 포섭한 결과 『백족』이라는 족칭이 공식화되고, 대리백족자치주가 탄생하였다. 이 책은 앞서 간행된 『제국과 변경』(혜안, 2017)의 연장선상에 있다. 두 책은 2013년에 결성된 연구회 〈제국과 변경〉의 활동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2017년 가을까지 만 4년간 이어진 연구회에서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는데, 그 근간에는 한 가지 공통된 문제의식이 있었다. 즉, 베스트팔렌체제, 양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각국의 국경 획정 문제, 프론티어에서 프론티어로 이어졌던 북아메리카의 서부 개척, 미국과 멕시코 간의 국경 획정 문제, 변경의 시각에서 청 제국의 역사를 다시 읽어내고자 하는 신청사의 연구동향 등 구미의 역사경험과 역사인식에서 비롯된 변경사의 문제제기를 한반도, 동아시아의 맥락에서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라는 화두가 공유되었다. 『제국과 변경』과 더불어 이 책이 동아시아 변경사의 대해로 이어지는 넉넉한 물길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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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공간의 시각으로 본 중국과 글로벌 지역학 2018/4

摘要:4차 산업혁명의 시대, 인간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에 몰살당할 것만 같은 분위기이다. 이종(異種)언어 간 기술적 소통마저도 AI번역기가 대체해 가고 있다. 이 공포를 이겨내기 위한 대안으로 내놓는 연구자들의 한결같은 『위안』은, 결국 인간이 주도하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선언이다. 인간과 기계의 공존에 대한 고민을 넘어서, 이제는 인간의 위상과 존재론적 의미를 처음부터 다시 정리하게 만드는 시대가 되었다. 이론적으로는 『인간』을 제대로 알아야, 입력과정에서 기계의 지능적 판단에 오류를 줄일 수 있다는 아이러니의 시대, 그럴수록 인문학의 역할은 기본기를 정돈하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분명 인문학 고유의 항상성이 갖고 있는 힘을 무시할 수는 없다. 문사철(文史哲)이 내포하고 있는 인류 보편적 가치의 고수, 훈고적 관성, 시대정신을 읽고 실천하려는 지향성은 인류를 지탱해 온 동력이다. 또 한편에서는 인문학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도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접학문과의 융복합적 연구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하고 있다. 지역학과의 교감이 대표적이다. 물론 지역학의 실체와 정의가 제대로 정돈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다른 문화권의 사회, 정치, 경제, 철학, 역사, 문화 등의 현상을 통섭적 관점으로 성찰하려는 시도는,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시대에 분명 유의미한 인문학적 행위이다. 도시공간의 재배치, 배제의 문화정치학━ 『인천』과 『차이니스 디아스포라』·································· 9 이평전 서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2000년 이후 중국의 지역격차 추세 분석 ·························33 이찬우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검은 영토」의 레짐: 中國 東北 공간의 재탄생과 내셔널리티 ··················································73 봉인영 충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중국 - 홍콩의 경계성: 홍콩 반환 20주년과 홍콩의 언어 · 교육 정책 ···············································95 박현준 충북대학교 강사 『農民工』의 계보학: 도시-농촌 공간의 역학성과 호구제도 ··················································· 123 이윤정 충북대학교 강사 20세기 중국의 ?妹愛 서사와 공간성 ························161 권혜진 고려대학교 중국학연구소 연구교수 『훠궈(火鍋)』, 중국을 이해하는 지역학 소스 코드 ······························································· 199 이상오 충북대학교 중국학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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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한서지리지 검토서 요동군, 요서군, 현토군, 낙랑군 | 유우찬 논문 2018/4

摘要:머리말/5 차례/9 제1장 요동군/11 제1절 요동군 18현의 설명기록/11 제2절 요동군 위치찾기/17 1. 요동군/17 2. 요동군 결정사항 4가지/22 3. 봉천이 감숙성이란 증거/23 제3절 양평현 위치찾기/26 제4절 요양현 위치찾기/34 제5절 신창현위치찾기.39 제6절 요동군 약식검토/41 제2장 요서군/47 제1절 한서지리지 기록/47 제2절 요서군 14현 위치찾기/49 제3절 요서군의 결론/60 제3장 현토군/61 1. 한서지리지 기록/61 2. 현토군 3현 위치찾기/64 3. 현토군의 결론/67 제4장 낙랑군/69 1. 한서지리지 기록/69 2. 낙랑군 25현 위치찾기/72 3. 낙랑군의 결론/80 참고도서/82 저자소개/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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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한국에 전하는 永樂大典-傳存 경위와 내용 2018/3

摘要:韓國에 전하는 중국 국가 급 문물 『永樂大典』 태학사는 한국역사연구원의 『石悟 역사연구자료 시리즈』 제1호로 『永樂大典』 영인본을 출간했다. 간행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영인본 永樂大典 卷之八千七百八十二, (卷之八千七百八十三) 1책은 비록 1935년에 생산된 등사본이라고 할지라도 학술적으로는 현 중국의 『국가급 문물 2등』에 준하는 귀중본으로 귀중한 역사적 자료이다. 편찬자인 한국역사연구원장 이태진 교수는 중국 국가급 문물인 「한국에 전하는 『永樂大典』」의 전존(傳存) 경위와 내용, 그리고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를 꼼꼼히 밝히고 있다. 『永樂大典』에 대한 해설과 원본(사진), 일람표 및 수록 도서 해제 등을 통해 역사적 자료의 가치와 의의를 드러내고 있는 이 책은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 연구자들에게 사료로 활용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백과사전 『永樂大典(영락대전)』을 발견하다》 『永樂大典』은 중국 명나라 초기 永樂帝 成祖(재위 1402~1424) 때 편찬된 문헌 백과사전이다. 대영백과사전이 이 책을 인류 역사상 최대의 백과사전이라고 평가하였다. 본문 22,877권, 목록 60권을 1책 당 2권으로 묶어 10,095책, 글자 수가 약 3억 7천만에 달하였다고 한다. 필사본으로 당초 1질이던 것을 嘉靖帝 世宗(1506~1566)이 화재로 인한 소실을 우려하여 1질을 더 필사하여 만들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큰 거질이 현재 겨우 800여 책만 전하고 있다. 청나라의 국운이 기울어 내우외환이 거듭하던 중에 그 많은 책들이 흩어지고 없어져 버렸던 것이다. 중국 국내에 남은 것들은 『국가 급 문물 2등』으로 지정되어 소중하게 보존되고 있다. 이렇게 귀중한 책 하나가 서울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의 도서 중에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 때 수집된 책들을 구간도서(舊刊圖書)라고 부르는데 그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편찬자는 2000년대 초반에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여 소장 경위를 확인하고 그 의의를 밝히고 「韓國에 전하는 『永樂大典』」으로 출간하게 된다. 《국가 급 문물 永樂大典》 영인본 永樂大典 卷之八千七百八十二, (卷之八千七百八十三) 1책은 비록 1935년에 생산된 등사본이라고 할지라도 학술적으로는 현 중국의 『국가급 문물 2등』에 준하는 귀중본이다. 『국가급 문물 2등』이라면 한국으로 치면 『국보』 또는 그다음의 『보물』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 사실은 중국 측에서는 파악하고 있지만 국내 학계는 잘 알지 못하는 상태이다. 책의 내용은 『僧』자 韻에 해당하는 명나라 이전의 불교 서적들의 기록들을 모은 것이다. 이 영인본이 중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불교학 연구자들에게 사료로 활용되는 기회를 제공하려는 것이 출간의 목적 중 하나이다. 특히 등사 후 그 원본이 현재 없어진 상태에서는 이 등사본이 해당 책자의 내용을 『유일』하게 전하고 있기에 그 학술적 가치는 크다고 할 수 있다. 《石梧(석오) 역사연구자료 시리즈를 기대하며》 한국콜마(회장 윤동한)의 교육과 역사에 대한 애정은 유명하다. 그래서 윤동한 회장이 설립한 석오문화재단을 통해 시작되는 한국연사연구원의 『石梧(석오) 역사연구자료 시리즈』는 공공기관이 쉽게 하기 어려운 주요 자료집의 활발한 출간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 시리즈의 제1호인 『永樂大典』 영인본 간행이 더욱 의미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간행사 Ⅰ. 해설 永樂大典, 어떤 책인가 / 李泰鎮 『李王職』 소장의 永樂大典 1책 매입 경위 추적-朝鮮總督府의 中國 古文獻 대량 매입의 의도 -/李泰鎮 永樂大典殘闕本ニ就テ(永樂大典殘闕本에 대하여) [日文] / 朝鮮總督府 李王職圖書室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永樂大典 현존본 일람표 (현존 권수와 소장기관) Ⅱ. 원본 (사진) 永樂大典 卷8782, 8783(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등사본]) 표지 卷之八千七百八十二 十九庚 僧 錄諸僧四 卷之八千七百八十三 十九庚 僧 錄諸僧五 Ⅲ. 唐版財產目錄 일람표 및 수록 도서 해제 『李王職』의 唐版財產目錄 일람표-현 한국학중앙연구원 왕실도서 藏書閣의 소장 현황 조사 / 金信會 작성 唐版財產目錄 주요 도서 해제 / 柳鍾守 Ⅳ. 中文翻譯部 出版寄 永樂大典是什 的 / 李泰 (崔桂花 ) 『李王 』所藏《永 大典》 一 入 程追蹤-朝 督府大量 中 古文 之意 / 李泰 (崔桂花 ) 〈唐版 目 〉主要 解/柳 守(崔桂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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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중국영웅사 :이금환의 비적문화 연구 2018/1

10、당대 율시의 지평을 열다 2018/1

摘要:『詩經』이래로 사언시는 儒家가 추구하는 『中和』 내지는 『雅正』의 심미관에 부합하는 정통의 시가 형식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六朝 시기를 거쳐 唐代에 이르는 동안 사언시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지는 형식으로 인식되었고, 새로운 『雅正』의 형식을 요구하게 되었다. 율시는 바로 이러한 시대적 배경 하에 등장하게 된 새로운 『정통』 시가의 형식이었던 셈이다. 이 책은 이 율시의 형식을 정형화시키고 내용과 예술 기교의 모든 면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 심전기와 송지문에 대한 연구 내용을 담고 있다. 흥미롭게도 심전기와 송지문은 같은 해에 태어나 상당히 비슷한 인생경력을 보여주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비슷한 인생경력 뿐만 아니라, 이 두 시인의 시가창작 양상 역시 너무도 흡사하였다. 이러한 연유로 역대로 이 둘은 나란히 심·송으로 병칭되었으며, 후세의 평자들에게도 늘 함께 평가를 받아왔다. 사실 심전기와 송지문은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시기에 과거에 급제했으며 동일한 궁정의 시단에서 활약하고 같은 이유로 폄적을 당했으니 언뜻 보면 이 둘은 매우 가까운 사이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존하는 이 둘의 詩作을 검토해 보면, 이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보여주는 시가를 창작한 적이 없다. 즉 이 두 시인은 다정한 친구사이였다기 보다는 시가 창작을 겨루었던 일종의 『경쟁자』 관계였다고 말하는 것이 좀 더 정확할 듯하다. 만일 이 둘을 선의의 『경쟁자』로 관계를 정립한다면, 이 경쟁은 중국의 시가 발전을 위해 매우 성공적인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두 시인의 시가 창작 성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율시의 형식을 중국의 정통 시단에 자리잡게 해 주었고, 각종 뛰어난 시가 예술 기교는 후세의 시가 창작에 커다란 전범이 되어 주었다. 또한 폭 넓은 시가 내용을 위해 여러 제재를 개척해 주기도 했으니, 이들의 시가 창작은 곧이어 등장하게 될 盛唐의 시가 번영을 위해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셈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唐詩를 이해하고 특히 율시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본서가 조금이나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Ⅰ. 序 論 Ⅱ. 初唐의 시대배경과 시인의 생애 1. 初唐의 시대배경 2. 沈佺期의 생애 3. 宋之問의 생애 4. 沈·宋의 人品과 詩品 (1) 沈佺期 人品論 (2) 宋之問 人品論 (3) 人品과 詩品 Ⅲ. 沈·宋 詩歌의 內容分析 1. 沈·宋 詩歌의 內容 考察 (1) 奉和應制 (2) 贈答酬唱 (3) 述懷言志 (4) 山水自然 (5) 邊塞閨怨 (6) 其他 2. 沈·宋 詩歌의 內容 比較 Ⅳ. 沈·宋 詩歌의 風格比較 1. 沈·宋 詩歌의 共通點 (1) 高華典重 (2) 淸新流暢 (3) 奇?險怪 2. 沈·宋 詩歌의 相異點 (1) 宋之問 詩의 含蓄性 (2) 沈佺期 詩의 悲涼感 Ⅴ. 沈·宋 詩歌의 藝術成就 1. 詩歌 領域의 開拓 (1) 詩歌 風格의 開拓 (2) 詩歌 題材의 開拓 (3) 詩歌 形式의 開拓 ­ 七言律詩 2. 情景 交融의 深化 3. 詩歌 言語의 精鍊 4. 律詩 格式의 完成 Ⅵ. 沈·宋 律詩의 詩史地位 1. 沈·宋 律詩 完成의 背景 (1) 文學 思想上의 背景 - 唐太宗의 『中和』觀 (2) 理論上의 背景 - 初唐의 聲律論 (3) 創作上의 背景 - 宮廷 시인들에 의한 律詩 창작 2. 沈·宋 律詩의 詩歌史적 意義 - 性情과 聲色의 통일 3. 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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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書評 白木沢旭児編『北東アジアにおける帝國と地域社會』 2017/12

12、書評 高綱博文・石川照子・竹松良明・大橋毅彥編『戦時上海のメディア : 文化的ポリティクスの視座から』 2017/12

13、한국현대동양철학과이상은 2017

14、四庫全書簡明目錄譯註 2017

15、譯註禮記集說大全.冠義 2017

16、譯註禮記集說大全.燕義 2017

17、현증장엄론역주 :반야사상의정수를교설한깨달음증득의안내서 2017

18、An Analysis on the Descriptive Structure shown in 2016/4

19、愚川先生文集.2 2016

20、濟庵先生文集.2 2016